광주시 서구 풍암동 짚봉산 중턱짚봉산 중턱에는 효열하동정씨행적비와 해봉경주김공기정효자비가 있다. 이 효열문은 30여 년 전에 월산동구 밖 염주마을 가는 길에 세워져 있다가 1998년 5월 짚봉산으로 옮겨 새롭게 단장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효는 만고불세의 시대정신이요. 우리 민족 고유의 덕목
광주 서구문화원(원장 정인서)은 17일 문화원 회원 2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9월중 지역문화답사로 벽진서원과 박호련 묘소, 봉산정사, 용두동고인돌 등을 둘러보고 지역문화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방안 등을 논의했다.이날 첫 방문지는 풍암동 벽진서원으로 이곳에 향사된 회배 박광옥은 임진왜란 당시 고경명, 김천일과 함께
광주시 남구 송하동 송산마을 ‘구산굴(송산마을 뒤 골짜기)’의 바위아래의 이야기와 관련한 것으로 보이는 금석문이 남구 송하동 송산마을 ‘구산굴(송산마을 뒤 골짜기)’의 바위에 새겨져 있다. 바위 위에는 폭 40cm, 길이 125cm 크기의 직방형(直方形)으로 비석모양을 파고 세로 2줄로 글귀를 새겼다. 금석문의 내용은 다음
남구 군분로77번길 26 (주월2동)소암김공영철기적비(紹菴金公永喆 紀績碑)는 난계정(蘭溪亭) 정자 경내에 있다. 난계정 정자의 주인인 광산김씨 난계(蘭溪) 김태석(金泰錫 1872 ~1933)은 지금의 광주시 남구 주월2동 월산마을(명지아파트 뒤)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 주변이 소구릉의 야산
남구 군분로77번길 26 (주월2동)조선말기의 한 선비가 벼슬을 등지고 낙향 유유자적하며 난계정이라는 초당을 짓고 지냈다. 정자의 주인인 광산김씨
난계(蘭溪) 김태석(金泰錫, 1872~1933)은 지금의 광주시 남구 주월동 2동 월산부락(명지아파트 뒤)은 부락주변이 소구릉의 야산으로
둘러진 곳에서 자리
광주 서구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우리동네 공원에서 놀자” 프로그램을 본격 운영한다.주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공원 이용만족도를 높임은 물론 이웃 간 소통의 장을 만들어 건강한 공원놀이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우리동네 공원에서 놀자 ”는 인근 공원을 찾는 주민 누구나 전통놀이 전문
벽진서원이 복원된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지 150년만의 일이다.벽진서원위패봉안추진위원회는 오는 7일 오전 11시 광주서 서구 풍암동 769-1번지에 회재 박광옥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있던 운리사 일대를 벽진서원으로 복원하는 행사를 갖는다.회재 박광옥 선생은 1526년 1월26일 광주 서구 매월
서구 풍암동의 옛 신암마을을 비롯 인근 매월동 동산마을, 임암동 화방마을엔 남아있는 고인돌군은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는 흔적을 보여주는 것으로 주거의 역사가 장구한 곳이지요. 풍암지구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신암근린공원과 금호아파트 옆의 근린공원에는 이들 마을에서 옮겨온 신석기시대의 역사를 증명
황호黃顥의 본관은 장수이며 자는 사서士瑞, 호는 남제南齊, 풍암동 운리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품이 대범화통하여 글을 잘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많은 의병을 이끌고 전라병마절도사 이복남李福南의 막하에 들어가 각지를 전전하면서 전공을 세웠다. 이복남은 우계羽溪 사람으로 좌찬성左贊成에 증직되고, 시호는
박광옥朴光玉(1526~1593)은 조선 중엽 명종과 선조 때에 성리학을 연구하고 향약을 널리 실시해 이름을 세우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살리기 위해 의병을 일으킨 의기로운 선비이다.박광옥의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경원景瑗, 호는 회재懷齋. 할아버지는 박자회朴子回이고, 아버지는 사예
서구 금화로 278(풍암동)1987년 개관한 실내체육관으로 배구 농구 핸드볼 배드민턴 등의 경기 및 연습을 할 수 있는 실내 체육시설이다. 부지면적 6만 1785㎡, 건축총면적 2만 2441㎡의 지상 5층 건물로 구성돼 있다. 경기장면적 1814㎡, 관람석면적 6707㎡이며 수용인원은 9,100명까지 가능하다.1997년부터 1999년까지 존속